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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차 기자질을 잠시 중단하고 1년간의 연수 생활이 시작됐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선 비슷한 기회가 종종 있지만 민간 기업에선 보기 드문 기회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한국을 떠났다.



국가와 지역, 대학을 고른 이유는 다른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고..

도착 후 이틀 동안의 얘기로 첫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항저우 샤오산(蕭山) 공항에 내리자마자 삼엄한(?) 입국심사와 세관검사를 뚫고 택시를 찾아 나섰다.

등에는 10kg짜리 48리터 배낭, 한 손에는 23kg짜리 28인치 캐리어, 다른 한 손에는 25kg로 중량 초과(했지만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봐준)한 이민가방, 거기에 노트북 등 주요 물건이 담기 배낭까지 앞에 매고 전진 또 전진했다.





택시 타기 전부터 곳곳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여기가 중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택시 라이러(来了. 왔다)!

미리 예약한 호텔 이름을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기사가 다행히도 알아들었다. 오~ 내 발음 역시 부추오(不错. 좋다).

트렁크와 뒷 자리에 짐을 때려넣고 돈이 들은 배낭만 품에 안은 채 조수석에 올랐는데, 뭐가 이리 복잡한겨. 휴대폰은 3대인데, 하나는 이어폰이 달렸다. 음악을 듣나 싶었는데, 라디오는 따로 켜져 있고... 알고 보니 위챗으로 상대방이 음성을 보내는걸 듣고 있더라. (이 자식아 운전에만 집중해!)



고속도로 지날테니 통행료 20원 더 줘야 한다는 말에 "밍바이러(明白了. 알았다)"로 답하니 "쩐빵(真棒. 최고)"으로 응수하는 기사. 야, 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알았지?


*보이는가, 왼쪽 폰에 꼽힌 이어폰!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전의 모습이다.



근데 이 자식 고속도로 나오자마자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 하더니 느닷없이 대로변 지하철 공사장에 차를 세운다. "덩이시아(等一下. 기다려)." 뭐지? 누군가를 만나 뭔가를 건네준다. 근데 이 자식 나를 의심도 안하는지 돈다발을 차에다 저렇게 두고...

여튼 다시 차를 달려 호텔 도착. 짐도 안 내려주고 그냥 앉아만 있다가 쌩하니 가버린다.

​​

다음 행선지는 학교였다. 구경도 좀 하고 내일 등록장소를 쉽게 찾기 위해서. 생각보다 지도는 잘 만들어서 한방에 찾아갔다.


*별표시 지점이 등록장소인 국제교육원 건물.



호텔에 짐을 풀자 마자 바로 나왔다.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기 위해. 중국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알리페이(支付宝(즈푸바오))나 위쳇패이(微信支付(웨이신즈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국 현지 은행의 계좌가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은 휴일에도 은행이 문을 열기 때문에, 그것도 따오 씨아우 우디엔(到 下午 五点. 오후 5시까지)! 이건 중국 거주자가 최고로 꼽는 장점 중 하나. 딴스(但是. 그러나) 친절하진 않다. ㅎㅎ

아무튼 호텔 근처에 세계1위 규모라는 중국공상은행을 찾아갔다. "워 야오 카이 짱후(我 要 开 账户. 계좌를 트고 싶습니다)"라며 여권을 내밀자. 바로 돌아온 대답은 "뿌씽(不行. 안돼)". 학생증도 없고 거류증 확인도 안됐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 학교로 가봤다. 다음날(9월2일) 아침부터 빠오따오(报到. 등록)을 하니까 미리 국제교육원 건물도 알아두고 교내 구경도 할 겸.

요리조리 길을 찾아 국제교육원에 왔더니 깐마(干吗. 뭐하는거야)? 무슨 등록절차를 하는게 아닌가. 알고 봤더니 기숙사 배정은 이미 시작된 것. 나도 맨 뒤에 줄을 섰고, 나에게 기숙사 배정이냐고 묻는 독일친구 다니엘에게 친절히 그렇다고 알려줬다.





일처리가 느리기로 세계 1위인 중국. 역시나 기숙사 배정도 하염없더라. 그 사이 신입생을 노리는 알바들의 습격! 이건 마치 내 또래 새내기는 알만한 007가방 영어테이프 강매의 재현이다. 대학 가면 영어공부 해야되니 당연히 필요하겠다 싶어 어느새 들고 돌아왔던 그 007가방. CD도 아닌 테이프가 수십개 들었던 그 가방은 지금쯤 어디에.. 개강하고 나에게 그 가방을 안겼던 놈들(아니 년들) 찾겠다며 캠퍼스에서 눈에 불을 켰지만 결국 찾진 못했다.

여튼 용팔이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한 언변에 영어, 중국어를 번갈아가며 구사하는 그들에게 다니엘과 나는 홀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당초 들었던 것도 마찬가지 가격이라 난 매진임박의 기운을 느낀 것처럼 내가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워 샹 마이 네이거(我 想 那个. 나 그거 살래)" 150원을 내면 한달에 28원씩 차감되고 데이터는 60기가, 중국내 통화는 120분이 제공되는 초초저가 땡처리급 유심칩이다. 이거 야동이 몇 편이냐! 다니엘은 이렇게 쌀 수가 있냐며 의심의 의심을 했지만 결국 나와 같이 구매 완료. 언니들에게 마이얼쏭이(买二送一. 투플러스원) 안되냐는 개드립을 쳤으나 분위기만 썰렁...





그러는 사이 내 차례가 돼 기숙사 배정을 받았는데, 띠로리~~ 1인실이 없으니 2인실로 배정한다. 션머(什么. 뭐라고)! 몇 번을 확인하고 확답까지 받았는데, 이게 뭔소리여. 여러 번 물었지만 푸우위엔(服务员. 직원)은 자기는 서류에 적힌대로 한다며, 나중에 1인실 생기면 바꿔주겠다고.

'아, 첫날부터 일이 꼬이는구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니 야오 한궈런마(你 要 韩国人吗. 너 한국인 원해)?를 반복하며 재촉하는 그녀. 한국 사람 피해 여기까지 온 나로써는 다른 나라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자 가리키는 손가락 끝엔 한 어린 친구가 있었다.

'저 친구 국적이 어딜까' 싶었던 그 친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온 17살 청년이란다. 뭐라고요? 투릌...ㅋㅋㅋㅋ

그래 어설픈 젊은 친구보단 아예 어린애가 낫겠다 싶어 "하오(好. 좋아)"라고 했지만 앞길이 막막. 생전 첨 보는 친구랑 같은 방을 쓴다니. 그럼 야동은? 방귀는? 어허.. 막막하네...

일단 1인실 생기면 무조건 바꿔달라고 말은 해놨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고, 일단 2인실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가족이 같이 온 청년과 함께 방을 보러 갔다. 말이 기숙사지 예전에는 게스트하우스로 쓰던 건물이라 호텔 트윈룸 구조다. 책상도 없고 화장대가 있고, 티테이블에 의자 두개 있는. 볼수록 답답...



통성명도 안하고 나는 내일 오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갑자기 몰아치는 허기. 1층 유학생 식당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아, 근데 이것들 눈치도 없이 왜 이리 맛집이야! 게 눈 감추듯 밥을 싹싹 먹고 다시 호텔로.


*보기엔 저래도 은근 맛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정말 비 내리는 항저우에서 달팽이가 된 기분이다.



첫 날부터 다이내믹했던 항저우.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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